악성빈혈을 영어로 뭐라고 하나요?

악성빈혈, 영어로는 pernicious anemia. 단순히 번역된 단어 이상으로, 이 병명 속에는 19세기 후반 의학의 무지와 좌절, 그리고 20세기 초 놀라운 과학적 발견의 드라마가 담겨 있습니다. “pernicious”라는 단어 자체가 “치명적인”, “악성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악성빈혈의 치료법이 발견되기 전, 이 병이 환자에게 가져다주었던 절망적인 운명을 반영합니다. 당시 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극심한 빈혈, 신경계 이상 증상, 그리고 궁극적인 죽음으로 이어지는 이 병은 의사들에게 불가사의한 존재였습니다.

악성빈혈의 원인은 위장 점막에 존재하는 파리에탈 세포 (Parietal cells)에 대한 자가면역 반응에 있습니다. 이 세포들은 위산과 함께 비타민 B12 흡수에 필수적인 내인자 (Intrinsic factor)를 생성합니다. 자가면역 반응으로 파리에탈 세포가 공격받으면 내인자 생성이 감소하거나 완전히 중단되고, 결과적으로 음식물을 통해 섭취한 비타민 B12가 소장에서 흡수되지 못합니다. 비타민 B12는 적혈구 생성에 필수적인 영양소이므로, 그 부족은 거대적모구성 빈혈 (megaloblastic anemia)을 유발하고, 이는 핵이 큰 미성숙 적혈구가 증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미성숙 적혈구는 산소 운반 능력이 떨어져 극심한 피로, 숨가쁨, 창백함, 심계항진 등의 빈혈 증상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문제는 빈혈 증상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비타민 B12는 신경계에도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장기간 비타민 B12 결핍이 지속되면, 말초 신경병증, 척수성 빈혈, 인지 기능 장애 등 심각한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신경학적 증상은 회복이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 있으며, 환자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하시키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과거에는 악성빈혈이 ‘악성’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 것입니다. 절망적인 증상과 높은 사망률로 인해, 악성빈혈은 당시 의학계의 큰 난제였던 것입니다.

다행히 20세기 초, 의학의 발전은 악성빈혈의 치료법을 발견하게 했습니다. 1926년 조지 마이너 (George Richards Minot)와 윌리엄 머피 (William Parry Murphy)는 생간 (raw liver)을 대량으로 섭취시키는 방법으로 악성빈혈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이후 비타민 B12의 분리 및 합성에 성공하면서, 악성빈혈은 주사를 통해 비타민 B12를 직접 투여하는 방법으로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악성빈혈은 치명적인 질병이라기보다는, 적절한 치료를 통해 관리 가능한 만성 질환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정기적인 비타민 B12 주사를 통해 평생 관리해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pernicious”라는 이름이 과거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현대 의학은 이 악성 질환을 정복하고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이름만큼 무서운 병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충분히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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