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몇글자?
낡은 사진첩 속의 기억 조각
어스름한 저녁, 나는 낡은 다락방에 웅크리고 앉아 먼지 쌓인 사진첩을 펼쳐 들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묘하게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낡은 나무 벤치에 앉아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 사진 한 장 한 장을 조심스럽게 넘기며,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파편처럼 떠올랐다.
첫 장에는 갓난아이였던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풍성한 머리숱에 똘망똘망한 눈망울, 볼록한 뺨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젊은 엄마의 환한 웃음과 듬직한 아빠의 따뜻한 눈빛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진 뒷면에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로 자라렴’ 이라는 엄마의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코끝이 찡해졌다. 엄마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다음 장에는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이 있었다. 큼지막한 책가방을 메고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옆에는 엄마가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즐거웠다. 학교 가는 길이 설렜고, 친구들과 함께 뛰놀며 웃는 것이 행복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순수한 기쁨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사진첩을 넘길수록 기억의 조각들은 더욱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몰래 바닷가에 놀러 갔던 사진,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여학생의 사진, 대학교 MT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불렀던 사진… 사진 속의 나는 늘 웃고 있었다. 때로는 어리숙하고 철없는 모습이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분명 행복했다.
그러다 문득, 텅 빈 페이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사진첩의 뒷부분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치 내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 기억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언제부터 사진을 찍지 않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추억을 만들지 않게 되었을까.
사진첩을 덮고 다락방을 내려왔다. 거실에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만이 텅 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잊고 지냈던 기억들은 과거의 낡은 사진첩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앞으로 텅 빈 페이지들을 어떤 추억으로 채워나갈지는 결국 내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나는 카메라를 들고 집 밖으로 나섰다. 낡은 사진첩 속의 기억 조각들을 다시 찾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셔터를 눌렀다. 오늘,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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